2016.01.29.

출근길, 지각의 기억

 

근래들어 평소보다 이른 출근길을 재촉했다.

대부분의 일반 직장인들의 평균 출근길이 9시 전후이다보니, 당연히 많이 막힌다.

그래서 더더욱 도로 복판에 좀더 오래 머무르게 되고 주변을 조금이라도 더 둘러보게 되었다.

오늘따라 내가 좋아하는 어둑어둑 꾸물꾸물한 하늘이 거참 반갑다.

 

 

 

 

 

 

하루를 조금 일찍 시작한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인가 괜시리 기분이 업된다.

그러고보니, 과거에는 대체 어떻게 제 시간에 출퇴근을 제대로 하고 다녔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단 하나, 늘 광역버스 마지막 끄트머리에 앞문 계단에 끼여 출근하던 갑갑하고 숨막힌 기억은 확실히 오래도 간다.

한 시간, 30분, 혹은 10분 전에 반드시 - 단 한번의 흐트러짐 없이 출근하는 성실한 직원은 확실히 아니었다.

가깝건 멀건 지각 출근은 나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늘 함께였고,

정말 중요한 전체회의 때마저 30분이나 늦어 대표의 눈총은 당연, 부서장에게 된통 혼난 적도 꽤 있었다.

요즘은 그 8시 30분 출근길, 9시 출근길이 조금 그립기도 하다.

지각은 좀 잦았지만, 매우 매우 열심히 일했던 기억은 새록하다.

요즘은 개인의 업무 스타일에 맞추어 flexible하게 스스로 출퇴근 시간을 정하여 근무하는 형태가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예전에 그런 근무환경이었다면 뭔가 좀더 큰 성과를 냈을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날렵했던 어린 시절은 이제 기억 저 뒷편 호랑이 담배 피던 옛날옛적이고,

몸집이 커져 둔해진 뒤로는 지각을 해도 절대 뛰지 않았다. 이미 늦었기 때문에.

그 1~5분의 달리기가 내 지각 여부를 결정한다고 해도 뛰지 않는다.

어느 순간, 지각하지 않기 위해 달려가던 내가 스스로 창피하고 허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달려가서 지문을 찍거나 직원출입카드를 찍거나 부서장에게 눈도장을 찍거나 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가

늦으면 그냥 가서 혼나고 굳이 1~5분을 위해 뛰지 않게 되었다.

8시반, 9시, 9시 반 - 시간 안에 뛰어들어갔는데, 출근 지문 인식기에 줄이 10명 넘게 늘어져있어 상황종료.

너무 일찍부터 그렇게 비사회적/비공동체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너무 어린 나이에 버스로 40분 이상 걸리는 중학교를 등하교했던 때문일까.

그러고보니 그 때도 심각한 지각을 한번씩 크게 했던 것 같다.

맞벌이 부모와 서로 다른 위치의 학교를 다니는 형제들 덕분에 알아서 등교를 해야 했는데,

1교시 중간고사 과목 시험 시간이 끝날 무렵에 도착했던 기억이 난다. 가족들은 모른다.

당시 시험감독 선생님이 착한 선생님이었고, 사회 계열의 암기과목이었기 때문에,

10분의 쉬는 시간 동안 혼자 구석에서 시험을 보게 해주었다.

그 때도 종점에서 종점의 버스를 타고 가며 늦었다는 걱정보다는

조금 늦은(학생도, 회사원도 거의 안보이는) 한산하고 여유로운 거리를 바라보며 마음의 여유를 즐겼던 것 같다.

그 버릇과 그 습관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여전하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제대로된 인성교육, 생활교육이 중요하다고들 하나보다.

만약 누군가에게 죽도록 맞았거나, 공포스러울만치 혼났다면

절대 지각을 안하는 어른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상상해본다. 웬지 재미는 없겠지만,

 

정해진 시간에 꼭 도착하여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공동체사회에서의 이탈은 조금 서글프기도 하다.

꽤 오랜 세월을 그렇게 익숙하게 살아왔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 무리들의 범주에서 벗어나 자유가 주어지고 개별활동이 가능해질수록

나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과 업무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넘어서서 건강에 적신호를 깜빡이기도 한다.

 

과거 내게 지각이란, 한산한 도로와 거리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 - 당시 마음 속 기억에 대한 즐거운 추억이었던 것 같다.

지각하며 느꼈던 - 늘 바삐 오가던 시간대를 피하면 이렇게 다른 세상이 있구나 - 라는 웬지모를 스릴,

이후 직장생활에 위험한 요소가 되어 습관적인 지각에도 남들처럼 바삐 움직이지 않긴 했지만,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같은 인간도 있어야 제 시간에 출근하는 성실한 다른 동료들이 더 돋보이는 거라고.

이제는 내게 지각이라고 지적할 누군가는 없지만, 나는 또다른 업무적 압박감을 책임져야 하는 또다른 다음 세상으로 넘어왔다.

조금 심심하긴 하다. 앞으로 더 많이 심심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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