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3.

도촌동 이야기

 

* 2015.11.17. 추가하여 덧붙임 *

성남고용지원센터는 현재 분당선 미금역 4번 출구에 위치해있음 (클릭하면 지도)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

사실 연고가 전혀 없는 동네이긴 하다.

 

처음 이 동네를 알게 된 것은,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업급여를 받으러 가야했던

2008년 하반기 무렵이었을 것이다.

국내법인 철수 및 타경쟁사 흡수로 인한

전 직원 권고사직이란 것을 처음 당한 후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성남 고용지원센터를 방문해야 했는데,

처음 들어보는 처음 가보는 동네였다.

겨우겨우 경로를 찾아 버스를 타고 해당 건물 앞에 내렸을 때 그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원래 어디든지 처음 찾아가보게 되는 동네들에서의 낯섦.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더 강하게 밀려오는 무시무시한 한기까지.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그 주변이 미개발되었거나 한참 공사 중인 구역구역들이 좀 있어서

혼자서 찾아간 생소한 동네로서는 좀 황무지 같은 무서움도 느꼈던 것 같다.

 

첫 방문 이후, 금방 취업을 할 줄 알았지만, 공백은 꽤 오래 되었다.

사실 좀 놀고싶었던 것도 있었던 것 같다.

한달에 120만원이 그냥 들어오는데 굳이 구직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했을까...

당장 경제적으로 큰 문제도 없었기 때문에,

6개월간 한번씩 왔다갔다하며

나름 뭔가 배워볼까 상담도 받아보고

그렇게 자주 드나들다보니 도촌동과 점점 가깝게 지냈던 것 같다.

 

처음에는 해당 건물의 고용지원센터에만 들렀다가 바로 버스를 타고 익숙한 동네로 빠져나왔었는데,

점차 주변 가게들에도 머무르기 시작했고, 홀로이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떤 날은 대낮에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괜히

도촌동행 버스를 타고 들러서 주변을 혼자 둘러보다가 가기도 여러번이었다.

 

그리고 다시 일을 하면서는 굳이 갈 시간도 없었는데,

한번씩 이직하면서 공백이 생길 때 신기하게도 그 동네를 들르면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던 것 같다.

 

아마 2011년 2012년 즈음 평소보다 다소 긴 공백기간에는

아예 도촌동 작은 커피숍으로 노트북을 들고 출근 도장을 찍기도 했었다.

번화가가 아니기 때문인지 사람이 꽉 차는 적이 거의 없었다.

거의 일주일에 3일 정도는 그곳에서 구직활동도 하고 이것저것 할 일을 했던 것 같다.

물론, 가게 직원들은 날 보면 짜증이 낫겠지만,

그래도 나름 비싼 와플세트나 등등을 주문하고 구석에 자리를 지켰는데,

아예 하루종일 빈 것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하고 혼자 지레 짐작해본다.ㅎ

아마 한 몇개월을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이상한 새 알바가 온 다음부터

그 여자가 날 눈치주길 시작했던 것 같다.

늘 앉던 자리였고 텅텅 비었는데도 거기 커피머신을 놓거나 다른 짐을 두고 정리하는 척 하며 앉지 못하게 하거나,

어느 날은 일부러 내 뒷통수 쪽에서 일부러 반나절 내내 쾅쾅대며 뭘 정리하는 척도 하고,

불친절은 기본으로 끝내줬다.

떠날 때가 되었나 싶어 조금 뜸하게 가다보니,

오랜만에 들른 어느 날 내가 늘 앉던 (혼자 노트북 들고 오는 사람이 편하게 앉기 좋은)

그 자리의 구조가 전혀 불편하게 바뀌어 있었다.

오지 말라는 얘긴가 하고, 이후 그 곳엔 안 갔다. 가도 불편할테니.

한참 뒤에, 친구랑 한번 내가 예전에 혼자 자주 가던 곳이라고 들렀었고 이후엔 딱히 갈 이유가 없이 바빴다.

작년부터 다시 그 동네를 한번씩 들른다.

실업 상태도 아니고 회사를 다니지만,

그냥 마음이 허해서인 것 같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들이 잘 조성되있고,

황무지 같았던 듬성듬성 공사장들도 건물들이 깔끔하게 더 들어섰고,

나름 보도블럭도 깔끔하게 잘 정리되있어

마음의 평화가 절실할 때면 일부러 찾아 들린다. 

  

       

   

   

 

요즘은 많이 추워져서 마냥 바깥에 오래 머물러있긴 힘들지만,

아침, 낮, 저녁 언제라도 편하게 들러 산책하기에 좋은, 맘에 쏙드는 동네이다.

나에게는 유독 도촌동의 랜드마크로 여겨지는 커피에반하다에서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들고 잠시 머무는 여유로운 사색의 시간이

요즘 몇 안되는 기분좋은 삶의 일부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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