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01

부러진 태극기

 

오랜만에 대낮 동네 산책을 해봤다.

달이 바뀐 첫 날이지만,

계절 카테고리는 여전한 "겨울"임을 실감케하는 추위에

도보는 사실상 다소 무리인 듯도 했다.

 

이왕 나온 김에 햇볕이 잘 드는 길로만 동네 한 바퀴.

운동, 산책 등에만 집중 할 수 있도록 특화된 탄천이란 것이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동네 보도블럭 길, 도로 옆길, 혹은 골목길 등으로 걷는 산책을 선호한다.

산책을 방해하는 찬바람 찬기운에 겨우 30분 남짓. 도보의 목표는 단순하다.

하루 최소 5천 걸음 이상.

 

아랫쪽 탄천 길과 같은 방향으로

동네 왕복2차선 도로 옆 보도블럭 길을 걷고 있는데,

마침 바로 옆을 지나가던 버스가 "빡!" 소리를 내며 뭔가 터지거나 부딪힌 듯한 소리를 내서

기겁을 하고 안쪽으로 더 피했다.

 

버스 부품이 뭐 부딪히거나 부서졌나 싶었는데

버스는 멈추지 않고 아무 일 없는 듯이 그대로 지나갔다.

뭔 일인가 다시 한번 자세히 보니,

삼일절이라고 도로 라인에 비스듬하게 비치해 둔 태극기 봉대(? 봉은 아닌 것 같고...)가 부러져 꺾여있었다.

 

 

뭐 평소에 대단한 애국심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부러진 태극기를 보니 그냥 뭐 좀 그랬다.

버스 등 큰 차들이 지나가는 도로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좁은 도로 쪽으로 굳이 비스듬하게 꽂아놨어야 하는 걸까...

다른 방법도 많을텐데... 하는 다소 아쉽다는 생각.

저 앞에 일정 간격을 두고 자리한 다른 태극기들도 오늘 중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염려가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저렇게 버스 등 큰 차와 부딪힐 경우,

방금 내 바로 옆에서는 다행히(?) 대만 부러져 꺾였지만,

차량의 속도 등 상황에 따라서는 지나던 보행자에 부딪힌 파편이 튀거나,

차량 파손 등으로 운전자와 탑승자도 다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쨌건 무사히 탄천을 넘어서 동네로 들어서는 횡단보도 파란불에서는

파란 불을 무시하고 코너를 돌며 돌진하는 에쿠스 차량에 치일 뻔 했다.

심지어 놀란 나와 정면으로 눈까지 마주친 운전자 아저씨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횡단보도를 횡단 주행했다.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공포감이었다.

 

동네 산책 30분. 불과 30분. 겨우 이 짧은 시간 동안...

사람다니는 보행길과 사람 지나가라는 파란색 신호등 횡단보도를 멀쩡히 잘 지나가고 있는데도

이렇게 예기치 못한 크고작은 사고들이 쉽게 일어나고 있다.

 

다같이 사는 세상에,

나만 조심하고 나만 지킨다고 해서 살아남기는 어려운 걸까.

조금만 방심하면 큰일나겠다 싶은 공휴일 동네 산책.

차 없는 탄천길 산책로로 다시 내려가야만 하나보다.

그간 되도록이면 지상, 도로변 인간용 보도블럭 보행을 고집했던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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