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8.
그녀는 예뻐졌다는 말, 조심하기

 

드라마 중독에서 하나 둘 벗어나고 있었으나,
어쩔 수 없이 볼 수 밖에 없는 대세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그러고보니 우연찮게도 갓정음이 나오는 이전 드라마를 본 적이 없긴 하다.
그래서 왜들 그렇게 갓정음, 갓정음 하는지는 잘 모르긴 한다.

(물론 댓글들을 보면 '갓'까지는 아니라며 인정 안하는 사람도 간간히 보이긴 한다)


기존 드라마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그녀는 예뻤다를 통해 처음으로 접하는
"연기하는 황정음"이 아직까지 내 눈에는 다소 어색하긴 하다.
그 부분을 굳이 끄집어내지 않는다면,

코믹하게 망가져 모든 것을 내던진 황정음의 연기에는
매회 감탄을 금할 길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100% 연기만 하는 배우들로부터도 다 만날 수 없었던
진짜 처절하게 망가진 여배우의 연기를 보니 짠하고 애처롭기까지 하지만,

이런 연기 정말 잘한다고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그 어떤 물리적인 성형의 유혹 없이
100% 패션코디와 메이크업 만으로 9회말부터 큰 변화를 외관적으로 이뤄낸 것은,
(물론 원래 오리지날이 뻔히 예쁜 건 알고 봤어도) 뭐 다행인 것 같다.

 

 


현재 수목드라마 최강자로서 시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고 봤을 때

성형인 아닌 이러한 자연스러운 외관적인 변신 방법은

모두에게 매우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주는 것임에는 분명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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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제 남은 얘기라면,

지성준을 사이에 둔 김혜진과 민하리의 우정 회복(사실 금이 간적도 없지만 허심탄회한 회포같은게 필요할 것이고)

김기자의 비밀과 앞으로 혜진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할지 여부, 그리고 모스트의 폐간 OR 지속 여부,

마지막으로 김혜진과 지성준의 Happily ever after... 뭐 그런 동화같은 스토리일 것인데,

사실상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예상하는 방향대로 뻔하게 흘러가겠지만

그 사이사이 에피소드들과 갈등구조, 각각의 캐릭터들의 눈을 뗄 수 없는 연기 덕분에

더욱더 그 장면 하나하나에 열광하는 것도 같다.

 

오늘이 다시 수요일이고,
그녀는 예뻤다를 볼 것은 뻔한 이 시점에서 드라마 내용과 발맞추어 제목을 다시 읽어본다.
그녀는 예뻤다. 물론 과거 어린시절에.

그리고 지금 다시 그녀는 예뻐졌다. 친해져서 진심을 알게되고 마음이 통하니. 

 

 

예.뻐.졌.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갑자기 잊어버렸던 완전 오래된 - 별거 아닌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대학 2학년? 시절,
강의를 마치고 여자인 한 학번 윗 선배와 버스 정류장으로 같이 걸어갈 일이 있었다.
아마 긴 방학 후 개강한 학기 초였던 것 같고
서로 왕래가 있지도 않은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였기 때문에,
딱히 무슨 말을 할 것도 없었다.

 

- 방학 잘 지냈니? 네
- 뭐하고 지냈니? 그냥 알바하고 이것저것이요.
- 그래...

 

그리고 할 말이 없던 나는,
얘들이 그러는데 선배님 되게 많이 예뻐지셨대요. 라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때 그 선배의 표정과 시니컬한 표정이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그 당시에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다...?는 건 약간 오버이고...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다.

 

왜냐하면,
방학을 보내고 개강해서 이리저리 동기나 선배들과 그간의 소식들을 얘기해오던 터에

유학갔더라 휴학했더라 무슨무슨 특이한 알바를 했더라 남친 생겼더라 등의 얘기를 전해들었을 때,

그 여자 선배가 방학동안 코 성형을 했는데, 수술이 잘 되서
그 전보다 훨씬 예뻐졌다더라... 라는 얘기를 들었었기 때문이다.
이미 얘들끼리 그런 대화를 했던 터라, 나는 아무런 의미없이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이미 검증된 표현인 "선배 예뻐졌다"라는 말을 대놓고 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

 

어쨌건 그 말을 한 순간,

그 선배는 시니컬한 피식으로

- 예. 뻐. 졌. 다...? (정말 띄엄띄엄... 무서웠다)
   그래, 내가 그 전보다 달라진 건 분명한데,
   예뻐졌다 라는 말은 웬지 듣기 싫더라.
   어떤 물리적인 변화를 줘서 더 보기 좋아진 거라고
   수술에 대해서 대놓고 얘기들 하는 느낌이 들어서 말야.

 

난 엄청난 말 실수를 한거였던 것이다.
요새야 그깟 코성형 따위는 정말 돈 있고 변화를 주고자 한다면 누구나 쉽게 수술해대는 부위이지만,
그 당시에는 쌍꺼풀도 좀 그랬던 시절이었던 지라, 아마도 말들이 많으니 자격지심이 있었던 건가보다.

 

그래도, 성형 수술을 한 것은 스스로 예뻐지기 위해 한 것인데,
수술이 잘 되었다보다는 예뻐졌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 좋아야 되는 것 아닌가.

어쨌건 그 말 이후, 안 그래도 안 친해 어색한 사이에 정류장까지 싸늘하게 갔던 기억이다.

 

그녀는 예뻐졌다.
다행히 마주보고 면전에서 상대방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 대화하는 너와 나 앞에는 없는 3인칭 그녀가 예뻐졌다이다.

듣는 이의 심정과 상황과 성격에 따라 이 말은 칭찬 혹은 뒷담화가 될 것이다.
예뻐졌다라는 표현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여러각도로 들릴 수도 있는 100% 초긍정적인 말이 아닐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오래전에 알았었다는 기억이, 그저 오늘에야 문득 떠올랐을 뿐이다.

 

그리고, 아무리 조심하려해도 끝이 없는 말과 글의 신비로운 상호작용이 놀랍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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