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색한 관계 중의 하나는

매일 같은 건물의 주차장을 이용하는 모르는 사람이다.

 

거의 매일 마주치며,

망할 지상 겹겹이 일렬 주차 시스템 때문에

하루 최대 4번까지 차를 빼러 왔다갔다 했다.

원래는 매우 일찍 나와 제일 안쪽에 자리잡고

퇴근 때까지 안 움직이는 편이나,

요즘은 일찍 나오는 경쟁자가 많아졌다.

 

그래서 요즘은 주차 스트레스 때문에...

아예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세운 날이 아니면,

용케 근처 다른 집 앞에 몰래 세우는데

언제고 묻지마 견인이 될 위험성을 안고 있긴 하다.

운전 경력 12년차. 이제껏 속도위반,신호위반,주차위반 한 적은 꽤 되지만,

- 속도위반은 뒤에서 하두 빵빵거려서 속력을 좀 내다가 찍히고,

- 신호위반은 꼬리물기 교차로 상태에서 신호등이 내 머리위에 있어 안보여 지나가다가 찍히고,

- 주차위반은 몰라서 걸리고... ,뭐 이런 식이다. 물론 다 변명 같겠지만...

한번도 견인된 적은 없지만, 뭐 이 참에 한번 견인되면 새로운 경험 하나 추가라고 생각할까

 

 

오늘 아침 출근길은 비바람이 친다.

2줄 주차에 안쪽 자리가 뻔히 있는데

빈 공간을 2개나 만들어놓고는

자신이 바로 나가기 좋게 제일 앞에 막아 세워놨다.

 

이 망할 모르는 사람.

그런데 이 인간의 얼굴과 차량과 전화번호까지 안다.

이렇게 주차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닌 습관적인 얌체 무매너 인간.

 

멀쩡한 날씨의 날... 하긴 전래없는 찜통 폭염 중에도,

이 인간 때문에 깜박이 켜고 내려 전화를 해야했다.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화가 났다.

비바람에 펄럭이고, 우산도 날라갈 지경에,

새로 지은 옆 건물 축하 화분은 혼자 깨져 파편 흙탕물.

그 와중에 나는

언제 다른 차가 비켜달라고 지나가려할지 모르는,

이 애매한 좁은 일방통행 입구에서 내려

이 인간의 차 번호를 확인하고 주차해야되는 차 좀 빼달라고 전화를 해야 했다.

 

뭐 잘 났다고, 차 앞 전화번호 옆에 휘갈겨 써놓은 쪽지 메모.

 

"곧 나갈 것이니, 용무 있으면 전화 바람"

 

그래, 곧 나갈 당신은 남들 주차 못하게 제일 앞 입구를 막아놓고 편하게 잘도 왔다 갔다 한다.

그런 쪽지 메모 한 장이 당신의 무식한 얌체 무매너를 모두 탕감해줄 것이라 착각하는가.

 

아침에 주차하는 사람들이 멀쩡하게 빈 자리에 차례로 주차할 수 있게 하고,

바로 나간다 할지라도 그건 그때 "당신이 치뤄야 할 차빼달라 전쟁"이다.

 

대체 왜 이 건물에 주차하는 사람들이

얌체 무매너 당신 때문에 이 비바람에 다 젖어가며

당신 전화번호를 확인하여 전화해서 차 빼달라는 수고를 매번 해야만 하는가?

 

바로 나오지도 않고 자신의 볼일 다보고 천천히 나와서 유유히 얌체처럼 사라지는 이 인간.

일년 가까이 이 망할 무매너 얌체 주차전쟁 중이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이 차 주인에게 차 빼달라고 전화한 적이 많은데,

이 차 주인도 내게 차를 빼달라고 전화한 적이 당연히 있다. 물론 멀쩡하게 순서대로 주차한 상태에서.

불과 두 달 전에 뜬금없이 내게 문자를 보냈다.

 

"주차 시 뒤쪽으로 바짝 붙이라"고.

 

아마 본인이 내 차 앞에 뒤늦게 주차하면서 내 차가 거슬렸나보다.

그런데 사실 정확하게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옆 차 라인과 맞춰 늘 세우듯 잘 세웠고, 내 차 앞 자리에는 큰 봉고차 한대도 충분히 들어올 수 있는 자리인데 말이다.

내 차가 작은 차라 그 인간이 보기에는 제대로 바짝 안세웠다고 우기는 것이다.

그리고 문자까지 보내다니... 본인의 얌체 무매너 행동에는 뻔뻔스럽기 그지 없으면서

남들에게는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나보다. 심심해서 거는 시비인지.

 

대꾸를 안할까 했다가...

"바짝 붙여 잘 주차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가보네요. 알려주셔서 감사. 다음부터 주의하겠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할 수 없이.

 

매일 오가며 이 차를 볼 때마다 이 문자가 생각나서 좀더 짜증스럽긴 하다.

 

오늘 사실 문자를 보내고 싶었다.

 

"아무리 바로 나간다 하더라도 매번 불편하게 주차 하시네요?

분명 주차 공간이 충분히 있는데도,

아침마다 뒤에 차 세울테니 차 좀 빼달라고 제가 전화해야 되는게 정말 번거롭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부탁드립니다"라고.

 

이 인간도 아무 문제 없는 지적질 문자를 지난번에 내게 했었으니,

나도 오늘 같이 100% 이 인간이 잘못한 것에 대해 뭐라도 문자를 보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냥 안하기로 했다.

귀찮다. 번거롭다.

남이 나를 지적하고 손가락질 하면 그냥 네이~ 하고 넘어가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정당한 무언가를 요구하고 부탁하면 그들은 딱히 고분고분하지 않고

오히려 아무 문제 없다며 당당하게 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같이 전국민 분노조절장애지수가 끝없이 올라가는 시점에,

그냥 마주치는 처음보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인간인지 여부를 알 수도 없고,

혹시모를 해꼬지도 두렵기 때문이다. ㅋㅋ 어쩔 수 없는 겁쟁이.

 

그냥 모르는 사람이다.

굳이 자꾸 엮일 필요 없는 모르는 사람.

하지만, 이 얌체 무매너 주차전쟁에서 계속 마주칠 인간.

 

아 생각이 너무 많아 피곤하다.

다행히 선선하다 못해 한기가 느껴지는 비바람이라도 있어

이 홧병을 삭혀주니 이렇게 오늘도 넘어간다.

 

 

 

+ Recent posts